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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14:30:00 윤태식
[히든플레이어] 프로야구 사상 가장 불운했던 신인왕 - 삼성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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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든플레이어 : 과거에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지금 우리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을 조명해보는 코너입니다. 

 

 

신인왕 수상 당시 이동수 [제공=삼성 라이온즈]

신인왕 수상 당시 이동수 [제공=삼성 라이온즈]

 

신인왕. 한 시즌동안 가장 뜨거운 활약을 펼친 신인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최근에는 신인들이 곧바로 1군에서 기회를 잡는 일이 줄어들면서 이른바 중고 신인들이 신인왕을 수상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프로야구와 아마야구의 격차가 크지 않았던 90년대엔 상대적으로 중고 신인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프로 입단 4년차였던 1995년 깜짝 활약을 펼치며 KBO 리그의 레전드가 된 이승엽과 마해영을 제치고 중고 신인으로 신인왕을 수상한 선수가 있다. 신인왕에 오른 뒤 불운에 시달린 탓에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만 그 선수. 히든플레이어 열 네번째 주인공인 삼성, 쌍방울, KIA 등지에서 뛰었던 이동수다. 

 

Emotion Icon 이동수 통산 성적  

[기록=STATIZ.co.kr]

[기록=STATIZ.co.kr]

 

이동수는 1992년 삼성 고졸 우선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문했다. 지명을 받기는 했지만 입단 당시 이동수는 팀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프로 적응도 더뎌 입단 3년차에야 2군경기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그는 빼어난 장타력을 선보이며 당시 삼성 감독이었던 우용득 감독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감독의 지지를 받으며 주전 자리를 차지한 이동수는 기대에 부응,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대활약을 펼친다. 시즌 초부터 가공할만한 화력을 뽐낸 그는 이 해 리그 2위에 해당하는 22홈런과 81타점, 타율 0.288을 기록하며 팀 간판타자로 떠오른다. 그 결과 이동수는 타율 0.275, 18홈런을 기록한 롯데의 대졸 신인 마해영을 밀어내고 중고 신인으로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Emotion Icon '중고 신인' 이동수, 신인왕이 되다 - 1995시즌  

[기록=STATIZ.co.kr]

[기록=STATIZ.co.kr]

 

하지만 그의 활약은 이어지지 못했다. 자신을 지지해줬던 우용득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해임된데다 2년차 징크스를 이겨내지 못한 이동수는 1996시즌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여기에 '괴물 타자' 이승엽의 성장으로 인해 포지션 경쟁에 내몰린 이동수는 김한수, 정경배와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결국 1997 시즌 중 롯데로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그러나 롯데에서도 부상으로 인해 경쟁을 이겨내지 못한 이동수는 1998시즌 중 다시 한번 쌍방울로 트레이드된다. 두 차례 트레이드가 각성의 계기가 되었을까. 이동수는 김성근 감독의 지도 하에 다시 한번 우뚝 일어선 이동수는 이 해 86경기에 출장, 타율 0.320, 19홈런을 때려내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어내게 된다. 

 

Emotion Icon 이동수의 커리어 하이 시즌 - 1999시즌 

[기록=STATIZ.co.kr]

[기록=STATIZ.co.kr]

 

이 해 이동수가 기록한 WAR은 4.56으로 이는 팀 내 1위이자 리그 전체 14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 수치를 144경기 기준으로 환산한 WAR/144는 4.97로 이는 2015시즌의 삼성 구자욱, 한화 이용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었다. 

 

Emotion Icon 이동수의 1999시즌, WAR 비교

[기록=STATIZ.co.kr]

[기록=STATIZ.co.kr]

 

이제는 자리를 잡는 듯 했지만 이동수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속팀 쌍방울이 모기업의 부도 속에 해체되며 마음 고생을 해야 했고 2000시즌 신생팀 SK 소속으로 두 자리수 홈런을 때려냈지만 선수단 정리 과정에서 다시 KIA로 트레이드되고 만다.

 

이동수는 다섯 번째 팀인 KIA에서 2001시즌 82경기에 출장, 팀 내 3위에 해당하는 15홈런을 때려내며 녹슬지 않은 장타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이듬해 부진하며 백업으로 밀려났고 2003시즌 두산으로 이적해 다시 한번 재기를 노렸지만 끝내 실패,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입단 4년만에 신인왕 자리에 오르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지만 각종 불운에 시달린 탓에 결국 야구 팬들의 기억 속에 그저 팀을 여러 번 옮겨다닌 저니맨으로 남아 있는 이동수.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그가 어느 팀에서든 꾸준히 기회를 받으며 자신의 날개를 더 활짝 폈더라면 지금 우리 기억 속에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우타 빅뱃으로 남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윤태식 -

전체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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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댕이 15537호 2018.06.28 15:24

    옛날에 삼성에 있을때 양준혁이랑 앞뒤로 파괴력을 보여줬던 기억에 요즘도 종종 찾아보던 선수였는데 이런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줄 몰랐네요~ 지금도 sk 퓨처스 타격코치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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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댕이 15537호 2018.06.28 15:24

    옛날에 삼성에 있을때 양준혁이랑 앞뒤로 파괴력을 보여줬던 기억에 요즘도 종종 찾아보던 선수였는데 이런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줄 몰랐네요~ 지금도 sk 퓨처스 타격코치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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